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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초월한 영화 만신의 힘 (주술, 역사, 여성영웅)

by funny8 202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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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 포스터 사진

2013년 개봉한 영화 ‘만신’은 실존 인물인 무당 김금화의 삶을 그린 작품으로, 단순한 인물 전기가 아닌 한국 전통 신앙, 여성 서사, 역사적 억압과 초월의 이야기를 담은 특별한 영화입니다. 시대를 관통한 여성의 생존기이자 예술적 헌신의 기록인 이 영화는, 시간이 흐른 지금 더욱 깊은 울림을 줍니다. 주술, 역사, 여성영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영화 만신의 진정한 힘을 살펴보겠습니다.

1. 주술이 아닌 삶, 무속의 인간적 얼굴

‘만신’은 무속을 신비하거나 낯선 ‘주술’로만 소비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무속을 한 인간의 삶, 한 여성의 생존 전략,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수행되는 ‘역할’로서의 무속으로 보여줍니다. 주인공 김금화는 귀신을 보는 능력이나 신내림으로 시작된 삶이 아니라, 현실적인 고난과 선택 속에서 무당이 된 인물로 그려집니다.

영화 속 무속신앙은 초자연적 존재와의 소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고통받는 사람들과 공감하며 위로를 건네는 실천 행위로 묘사됩니다. 이는 특히 굿 장면에서 두드러지는데, 단순한 퍼포먼스를 넘어서 공감과 치유의 의식으로 그려지며, 무속이 단지 종교가 아닌 ‘공공의 감정 해소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영화는 무속을 전시적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생활 속에 녹아 있는 믿음의 체계로 조명합니다. 이는 김금화라는 인물이 실제로 그 믿음을 삶으로 증명해 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관객에게 질문합니다. 주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미신인가, 믿음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정체성인가?

결국 영화는 무속의 신비로움보다 그 안에 담긴 인간성, 관계성, 공동체적 의미에 주목하며, 주술을 ‘이해할 수 있는 세계’로 끌어오는 데 성공합니다. 이것이 만신이 단순한 무속영화가 아닌, 사람을 이야기하는 휴먼드라마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입니다.

2. 억압의 역사 속, 여성의 기억을 되살리다

‘만신’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영화가 한 여성의 삶을 통해 시대의 폭력성과 억압을 정면으로 직시한다는 점입니다. 김금화의 인생은 단순한 무속인의 삶이 아닙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군사독재 시절을 지나며, ‘무당’이라는 이유만으로, 혹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야 했던 고난이 이 영화의 주요한 정서적 배경입니다.

영화는 어린 시절 엄마가 무당이라는 이유로 따돌림과 박해를 받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후 김금화가 무속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때로는 종교적 탄압 속에서 살아남는 과정은 단순히 개인사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반영합니다. 특히 1970~8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무속은 퇴폐 문화로 낙인찍혀 탄압 대상이 되는데, 영화는 이를 김금화의 시련을 통해 서늘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여성의 끈질긴 생존 의지와 예술적 승화입니다. 만신은 억압에 무너지지 않고, 굿판을 예술로 끌어올리며 대한민국 최초로 국무총리상을 받은 인물입니다. 즉, 억압된 존재에서 국가가 인정한 예술가로 거듭나는 역설적인 여정을 담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서사는 단지 김금화 개인의 영웅담이 아닙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지워진 수많은 여성들, 민중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주는 ‘기억의 복원’이며, 영화는 이를 시적이고 절제된 연출로 풀어냅니다. 억눌렸지만 꺾이지 않은 이 여성의 이야기가 지금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그 강인한 서사 구조와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에 있습니다.

3. 여성영웅, 자기 서사를 완성하다

한국 영화사에서 ‘여성 영웅’은 많지 않습니다. 특히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여성의 정신적 성장과 사회적 성취를 온전히 담아낸 영화는 더욱 드뭅니다. ‘만신’은 바로 그런 드문 영화 중 하나입니다. 김금화는 초능력적 능력으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와 타인의 고통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며 성장해 나가는 실존적 영웅입니다.

영화는 김금화의 삶을 한 소녀에서 중년, 노년으로 이어지는 3명의 여배우를 통해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구조는 그녀의 성장을 단편적인 ‘과거 회상’이 아니라 지속적 자기 서사의 확장으로 설계합니다. 각 시기마다 그녀가 마주하는 상황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소외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금화는 외부의 평가나 체제에 기대지 않고, 자신만의 내면의 소리와 신념을 따라갑니다. 그녀는 세속적인 성공보다, 자신이 받은 신을 배신하지 않으려는 ‘신의 딸’로서의 책임감과 운명을 선택합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태도를 넘어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의 선언입니다.

특히 이 영화는 여성 캐릭터를 대상화하거나 연민의 시선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녀는 강하고, 지혜롭고, 복잡하며, 무엇보다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갑니다. 관객은 그녀를 통해 ‘여성 영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만신’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이 강인하고 단단한 여성 주인공의 서사가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만신’은 주술이라는 틀 안에 삶의 존엄, 역사적 상처, 여성의 주체성을 모두 담아낸 깊이 있는 작품입니다. 무속을 통해 공동체를 위로하고, 억압 속에서도 예술가로 승화된 김금화의 이야기는 단순한 전기영화가 아니라, 기억과 존중, 그리고 시대를 초월한 힘을 전하는 영화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한국적 서사와 강인한 여성 이야기에 갈증을 느끼는 분들에게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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