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에 개봉한 영화 *인피니트(Infinite)*는 한때 주목받았지만, 당시 기대에 비해 아쉬운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이 영화가 담고 있던 철학적 메시지와 기억, 전생, 영생이라는 주제를 다시 조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한 SF 액션으로 보기에는 그 안에 숨겨진 개념들이 깊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인피니트를 다시 바라보며, 그 속에 담긴 기억의 연속성과 인간 존재의 본질, 그리고 윤회의 개념까지 분석해보려 합니다.
기억의 연속성: 존재를 정의하는 열쇠
인피니트는 주인공 에반이 반복해서 환생하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영화에서 기억은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닌, '존재의 증거'이자 '영혼의 연속성'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주인공이 과거 생의 기억을 점차 떠올릴 때마다 현재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는 장면들은, 단순한 액션 영화 이상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기억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한 뇌의 저장 기능일 수도 있지만, 인피니트에서는 기억을 통해 윤회를 증명하고, 인물들의 존재 이유를 정당화합니다. 전생의 기억이 현재의 삶을 지배하고, 그것이 인간의 '의지'와 '결정'에까지 영향을 주는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이는 우리도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미래의 행동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인피니트 세계관 속에서는 기억을 온전히 유지하는 이들이 특별한 집단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 설정은 기억이 단순히 개인적 차원이 아닌, 인류 공동체적 차원에서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인간의 의식과 기억이 얼마나 깊고도 위험한 무기인지, 영화는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생의 존재: 윤회와 카르마의 세계관
인피니트의 핵심 설정은 바로 '환생'입니다. 인류의 소수는 수천 년에 걸쳐 환생을 반복하며, 전생의 기억을 유지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기억하는 전생을 바탕으로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지만, 반대로 이를 저주로 여기며 세계를 파괴하려는 세력도 존재합니다.
이 대립은 단순히 선과 악의 구조를 넘어서, 존재의 목적과 기억의 무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기억을 짐으로 느낀 자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고, 그것을 자산으로 여기는 자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활용합니다. 이는 마치 불교의 윤회관과도 유사하며, 카르마(업보)의 개념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이 단일한 삶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전생에서의 선택이 현생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보다 심화시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의 삶만으로 존재를 정의할 수 있을까요? 인피니트는 이 질문에 도전합니다.
영생의 저주: 죽지 않는 자들의 고뇌
인피니트에서 일부 인물들은 사실상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삶과 죽음, 그리고 그 속에서도 지속되는 기억은 어떤 이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형벌입니다. 특히 영화의 주요 antagonistic 캐릭터인 '배스커'는 전생의 기억에서 벗어나고자 인류 자체를 파괴하려는 충동을 보입니다.
이는 영생의 무게가 인간에게 얼마나 큰 부담이 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단순히 육체적으로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고통과 아픔, 실수를 기억한 채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이는 고전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이며, 인피니트는 이를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한 셈입니다.
결국 이 영화는 묻습니다. ‘기억’과 ‘의식’이 영원하다면, 그것은 삶일까요, 형벌일까요? 기억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영화 인피니트는 단순한 SF 액션이 아니라, 존재와 삶의 의미를 탐구한 하나의 철학적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인피니트는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긴 기억, 전생, 영생이라는 개념은 재조명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단순한 오락을 넘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을 다시 바라본다면, 분명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액션이 아닌 철학으로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